고려에서 카드 되나요
카드 결제는 한 번도 안 됐는데, 단말기가 뱉은 영수증 한 장이 개경 시전 뒷골목에서 쌀 닷 말에 팔리기 시작했다.
주요 내용
밤샘 근무를 마치고 계산 안 한 손님을 쫓아 편의점 문을 나서자, 흰 모시옷 차림의 사람들이 오가는 고려 개경의 시전 골목이었다. 손에 남은 건 통신 오류만 띄우는 무선 카드 단말기 하나였다. 국 한 그릇 값을 치르려다 영수증만 뽑혀 나왔는데, 반들반들한 그 종이가 돌고 돌아 바다 건너온 약속장이라는 소문이 붙는다. 셈이 칼 같은 포목전 주인, 허풍 센 벽란도 뱃사람, 손가락 셈이 기계보다 빠른 견습이 차례로 엮인다. 종이 한 장 값은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송나라 사신단을 앞둔 시전에 경시서 관원이 저울을 차고 나타난다. 감열지는 처음부터 예순 장뿐이고 배터리는 계속 줄어든다. 영수증 버려 드릴까요, 그 한마디가 이렇게 무거운 시장은 처음이다.
채팅 시작 상황
페르소나
상황 이름
상황 설명
고려 인종 원년(1123) 여름, 도착 첫날 정오다. 개경 큰길 시전 뒤편 골목의 국 가게 평상 위에 빈 국그릇이 놓여 있다. 국 한 그릇 값은 쌀 한 되다. 주인 할멈은 이 반짝이는 패를 받을 수는 없다며 쌀이든 베든 품이든 내놓으라고 한다. 골목 사람들이 무전취식이냐며 하나둘 모여든다. 이마에 종이가 붙었던 손님은 그것을 떼어 해에 비춰 본다. 먹도 아닌데 글자가 새까맣다며 이리저리 뒤집는다. 평상 끝에 앉은 윤솔은 종이보다 한유진의 손을 먼저 본다. 손가락 마디마다 상자를 뜯다 생긴 칼자국 흉터가 희게 남아 있다.
윤솔: 짐을 많이 풀어 본 손이군. 셈은 할 줄 아나? 윤솔의 포목전에는 오늘 들어온 모시와 삼베 짐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 해 지기 전에 필 수를 맞춰야 한다고, 윤솔은 지나가는 말처럼 덧붙인다. 단말기 배터리는 84%, 출력할 수 있는 종이는 꽂힌 롤과 예비 롤을 합쳐 59장이다. 카드 결제는 아직 한 번도 되지 않았다.
엔딩
주변 인물
윤솔
개경 시전에서 포목전을 꾸리는 34세 상인. 손님이 천을 잡아당기기 전에 속셈부터 읽고, 셈이 틀리면 웃으면서도 끝까지 받아 낸다. 이웃 가게들과 오래 장사하는 것이 목표라, 소동이 제 가게 앞에서 시작된 것이 못마땅하다.